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친숙한 사이에서 별 부담 없이 ‘Damn good!’이라는 슬랭을 자주 사용한다. ‘Damn’이라는 단어는 원래 욕설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기에 슬랭으로 분류된다. ‘Damn’은 ‘Damnation (永罰)’의 약자다. 직역하자면 ‘더럽게 좋다’, ‘죽여주네’쯤 되겠지만 실제 의미는 ‘참 좋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에 가까운 감탄사다. 품위 있는 표현은 아니지만, 매우 긍정적인 감탄이나 칭찬으로 쓰일 수도 있다.
경상도 지방에서 쓰는 ‘문디 가시내야’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부정적으로는 ‘못된 계집애 같으니라구’라는 뜻이겠지만, 친한 사이에서는 ‘이 깍쟁이 같은 예쁜 애야’ 정도의 애정 어린 표현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언어란 결국 그 문화를 직접 경험해야 특정한 상황에서의 그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나와 제법 친해지고 난 후, ‘Damn good!’이라고 말해서 배꼽을 잡고 함께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보살피는 노인 시설에는 가끔 한국 분들이 입소한다. 그중 Dr. James Kim이라는 한국 분이 있었다. 74세, 아직 늙었다고 할 수도 없는 나이였다. 처음에는 영어 밖에 못 하기에, 이 사람과 한국말로 정을 트는 건 어렵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치매가 점점 심해지자, 그는 결국 모국어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여러 치매 환자들을 돌보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치매에 걸렸다면, 그의 언어는 결국 가장 깊은 곳에 남아 있는 본래의 모국어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대여섯 살에 이민을 와 평생 영어만 사용하며 살았던 사람도, 치매 환자라면 마지막 순간에는 어린 시절 서툴게 익혔던 언어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한다. 자녀들에게 모국어를 익히게 하는 것이 피차간에 얼마나 지혜로운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Dr. James Kim은 뇌혈관 파열로 인해 몸이 자유롭지 못했다. 혈관성 치매가 진행되면서 뇌 기능도 점점 퇴화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강한 자존심과 우울증 탓에 입을 굳게 닫고 지냈지만,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하더니 결국 자신의 삶을 털어놓았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월남했고,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시대의 설움과 고통을 온통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살았단다. 그러나 워낙 명석했고 포부도 커서, 바다를 건너서라도 새 삶을 개척해보겠다며 매우 젊은 시절에 미국행을 꿈꾸었다. 아무 피붙이나 지인도 없이, 그것도 빈 주먹으로 바다를 건넜으니 알 만한 사람이다. ‘어차피 바닥 인생, 어디를 가든지 더는 밑질 것도, 손해 볼 것도 없고, 이제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단다. 참 멋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 그렇다. 한국인은 정말 무섭다. 어디에 던져 놓아도 반드시 살아남는다. 아니, 한몫을 크게 한다. 그게 한국 사람의 기질이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악착같이 살아낸 끝에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고, 후에는 사업을 벌여 크게 성공해서 돈도 원 없이 벌었다. 사람도 모이고, 돈도 모이고,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허리 필 무렵 어느 날, 으레 그 못된 공식처럼, 나쁜 병이 찾아들고 인생이 다시 먹구름이 되더란다. 참 이상한 것은 인생사는 늘 엎친데 덮친다. 갑작스레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뇌가 망가지면서 언어가 급격히 퇴화되어, 영어 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딸과는 원활히 소통할 수도 없게 되었다. 모든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외롭고 처량맞고 아프고 막막하고, 인생이 너무도 서럽단다. 큰 병원 몇 곳을 전전했지만 마침내 의사들도 손을 들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삶을 좀 기대고, 진심어린 도움을 받고 싶어서 내게 왔단다.
그의 이야기를 한동안 들어주다가, 나와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니 좋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뜸, ‘Damn good!’ 하는 것이다. 그렇다, 정말 Damn good이다. 사람이 언어를 터놓고,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그건 정말 Damn good인 걸 우린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줄곧 별로 중요하지도, 귀하지도 않은 것들을 추구하며 인생을 허비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보니 그렇다. 진짜 Damn good은 따로 있는데…
그 이후로 그는 차차 잠도 수월하게 자게 되고 식사 양도 늘고, 아직도 가련한 정도이긴 하지만 그래도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그는 심신이 다시 회복되면 하고싶은 것들이 많았다. 이제는 사람 같이 살고 싶단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인생을 즐기지도 못했단다. 가르치느라, 비즈니스 하느라, 일만 알고 돈만 벌었단다. 돈이 자신을 지킬 최후의 보루라 여겨서 그랬었는데, 너무도 어리석었었다고 혀를 찬다. 그는 내가 할 말을 자기가 다 하고 있다.
한참을 더 듣고 있다가, ‘그래서 회복되면 뭐를 제일 하고싶으냐.’ 물었다. 그는 뜸을 좀 들이더니, 제일 먼저, 짜장면 집에 가고 싶단다. 그 다음엔, 그동안 미뤄두었던 바다낚시를 가련다고. 그게 글쎄, 그가 꿈에도 그렇게 그리던 소원이란다, 나 원 참!… 그래서 그랬지, ‘회복되기만 하시라. 그럼 내가 꼭 짜장면 집에도 데려가고, 바다 낚시도 데려가마’고, 철석같이 약속을 했다. 물때를 확인해보고 오는 6월 중에 가자 했다. 그랬더니 또다시 귀청이 떠나갈 듯, ‘Damn good!’ 하는 것이다. 그래, 맞다, 또 Damn good이고 말고! 사람이 아무 때고 짜장면 집엘 가고, 바다낚시 가고, 친구들과 어울려 밥 먹을 수 있는 것이 Damn good인 걸 우린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젊은 사람이 숨을 안 쉰다, 바보같이, 오월에!
사실은 ‘멍청하게 시리’라고 말해도 난 성이 안 풀린다.
내 말은, 열심히 다니자, 신나게 인생을 즐기자, 후회하지 않게 시리. 아직 건강할 때 짜장면 집도 가고, 바다도 가고, 원없이 가자. 네가 보고 싶다고, 널 사랑한다고, 널 아낀다고 말도 하자. 내가 미안했다고, 날 용서하라고, 나도 널 용서한다고, 그렇게 말하자.
우리 인생이 Damn good이 되도록.
Damn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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