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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메뉴는 와플이다. 맛있게 구울 참이다. 나야 아침을 꼭 밥으로 먹어야 하는 사람이지만, 서양사람들에게 아침부터 밥을 줄 수가 있나. 와플, 팬 케익, 오트밀, 시리얼 등의 메뉴를 하루씩 돌려가면서, 바나나 같은 과일 하나, 그리고 계란 스크램블 등과 함께 아침 식사로 제공한다. 노인 환자들은 치아가 성성하지 못하니 주로 부드럽고 물렁한 음식으로 마련해야 한다. 하기야 서양 사람들은 굳이 노인이 아니더라도 아침에 주로 그런 것을 먹고 일터로 나간다. 한국 사람들은 복에 겨운줄 알아야 한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뭐니뭐니해도 일단 잘 먹어야 한다. 종합영양제나 기타 식품 보조재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너무 의존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연로하신 분들을 돕다 보면 더 절감하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 옛 어른들 하시던 말씀처럼 사람은 밥힘으로 사는 거다, 그게 무슨 밥이 되었든지. 식사를 잘 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성스럽게, 맛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잖아도 입맛이 없는 노인들에게 정성이 빠진 음식을 준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처럼 비교적 작은 규모의 요양원은 집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련하는 것이 번거롭고 힘들기는 하지만,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자면 집밥 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려나. 난 어쩌다 음식점에서 한끼 식사를 하고 나면, 집에 와서 물을 얼마나 많이 들이키는지 모른다. 너무 과하게 사용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양심없이 많이 사용해서 그렇단다.

‘남의 밥 얻어먹으면 배고프다’는 말이 있다. 그건 정말 그렇다. 꼭 체면치레로 적게 먹어서가 아니라도 남의 밥은 항상 배고프다. 금세 꺼진다. 더구나 노인 환자들은 어디엔가 정신을 온통 쏟고 무엇인가 열중하는 분들이 아니니까, 늘 먹는 것만 기다려지는 것이 당연하다. 음식 양을 적게 배식해서가 아니라, 그냥 배가 고픈 거다. 어쩌면 마음이 고픈 거다. 식사를 한후에 금세 되돌아와서는 다시 먹을 것을 찾는 이들도 있다. 물론 치매라서 5분쯤 전에 식사한 것을 기억하지 못해 그러는 경우도 있다. 그럼 마음이 짠하다. 어쨌든 노인 환자들은 주방에서 무슨 음식을 준비하나 항상 관심이 대단하다.

 

우리 시설에 가끔 한국 할머니들이 들어오신다. 어느 나라 사람을 받겠다고 광고하면 그것도 인종차별로 저촉될 수 있어서 보통은 지원하는 분들 순서대로 받는다. 그래도 한국 분들이 오면 참 반갑다.

98세의 선자 할머니는 왜소한 체격의 아담한 분위기, 영락없는 한국 여인이다. 가끔씩 고집 세고 매서운 특유의 기질도 있지만, 잘 웃고 섬세한 성격의 사랑스런 할머니다. 옛날 같으면 육 칠십만 되어도 노인 티가 역력했지만, 이제 확실히100세 시대가 되었다. 우리 시설에도 100세를 넘게 사신 한국 할머니들이 몇 분 계셨었다. 선자 할머니께, ‘할머니로 부를까요, 아니면 아주머니로 부를까요?’ 했더니, 씩 웃으며, ‘아주머니가 좋지요.’ 하신다. 아마 아가씨라는 옵션을 드렸으면 틀림없이 미스 고라고 부르라 하셨을 게다. 저녁 때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길 때가 할머니의 체중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할머니, 좀 무거워지셨네?’ 하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내가 그렇게나 무거워요?’ 하신다. 물론 뇌의 전기 회로가 얽히면, 갑자기 논리가, 이성이, 그리고 체면도 안 통하는 치매환자 특유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참 사랑스런 할머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침 식사로 구워 드린 와플 몇 조각을 아주 맛있게 드시더니, 살며시 따로 돌려 놓으신다. 왜 더 안 잡수시냐 물으니, 아이들 하나씩 주고 싶으시단다. 그 ‘아이들’은 이따금 퍼실리티에 교대로 한번씩 들르는, 같이 늙어가는 자식들이다. 엄마만큼 머리도 쇠고 눈도 침침하고 결리는 곳도 많은, 똑같은 노인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자식들인 게다. 치매가 걸린 백세가 다 된 엄마에게도…

온갖 좋은 것으로 구워낸 올개닉 와플을 맛보시더니 자식들이 떠올라 목에 넘길 수가 없으시단다. 물론 그 와플은, 내가 좋아하는 것 모든 것을 다 넣고 만든 기막힌 제품이긴 했다. 통밀가루에 콩가루, 들깨가루, 호박씨, 호두 으깬 것, 그리고과일까지 함께 갈아 반죽해서 구운 것이니, 맛있는 건 당연하지만, 자식들 생각에, 글쎄, 그걸 못 넘기시네… 바라보는 내 가슴이 그냥 먹먹해진다.

 

부모라는 거 참 이상하다. 하루 종일 내 생각만 하고 사는 것은 어려워도, 온종일 자식 생각만 하고는 살 수 있고, 내목구멍에는 아무거나 넘어가도 괜찮은데, 아니, 때를 넘겨도 배고픈 줄도 모르는데, 자식 목구멍에는 좋은 것만 넘겨야 하고… 좋은 것, 맛있는 것이 생기면 주섬주섬 어디에 싸서 자식들 가져다 줄 생각에 마음이 바쁘고… 세상에, 짝사랑도 이런짝사랑은 없다. 보답은 받지도 못할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런 건 상관도 없다. 아니, 부모의 뇌리 속에 보답이라는 개념이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누구나 제 새끼 낳아 봐야 절절한 그 심정 그제야 비로소 아는 걸 보면, 우린 부모 사랑 보답은 커녕, 그 개념을 제대로알지도 못했었던 거다. 난 할 말이 없네. 할머니 와플이나 더 구워드려야 겠다. 더 좋은 걸로, 맛있게, 날마다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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