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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서 치매 노인들을 보살피며 함께 살아온 지 올해로 열다섯 해가 되었다. 그동안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그리고 나는 삶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종종 깊이 생각에 잠기곤 했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늙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늙어 가고, 노년이 되면서 여기저기 결리고 아프며, 모든 면에서 예전 같지 않다. 눈은 침침해지고, 귀는 어두워지며, 감각은 무뎌진다. 치아는 하나둘 헐거워지다가 빠지고, 걷는 것도 힘들어지며,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막상 노년이 되고 나면 그 현실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안타깝고 처량하다. 더욱이 치매까지 겹치면 삶은 더욱 막막해진다. 결국엔 사회와 가족과도 단절된다. 그걸 굳이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냥 그렇게 된다.

노년에는 후회도 많다. 살면서 못한 일, 하지 않은 일, 잘못했던 순간들이 자꾸 떠오른다. 그때 내가 참 어리석었어, 왜 그렇게 했을까, 조금만 더 잘할 걸, 용기를 내볼 걸… 뒤늦은 후회와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내가 보살피는 노인분들을 보니 그렇다. 나는 과연 어떤 노년을 맞이하게 될까. 그리고 그때 어떤 마음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될까.

 

팔십도 훌쩍 넘은 로레따 할머니는 우리 요양 시설에 온지 일년 정도 된 전직 간호사 출신의 이태리계 할머니다. 평생을 수술실 간호사로 일했으며 건강에 관한한 누구보다 전문가였다. 자기 건강을 어지간히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건강은 마음대로 안되는 모양이다. 참 이상한 것 하나는, 비교적 신경을 끄고 살면서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 하며 자유스럽게 사는 사람들 중에도, 늦게까지 건강을 잘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건강 전문가들, 특히 먹고 마시는 것 꼼꼼히 따지고 운동 열심히 했던 이들도, 노후에 여러 질병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있다. 로레따의 경우가 꼭 그렇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의아스럽고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로레따는 우리 시설에 들어올 때부터 당뇨 후유증으로 시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고, 사지가 점점 굳어가서 더 이상 혼자서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서 입원한 환자였다. 몸을 씻고 머리를 빗고 밥을 먹는 것까지, 매사에 그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물론 대소변 해결도 도움이 필요했다. 몸이 많이 경직되어서 리클라이너나 휠체어에 앉아있기도 힘들다. 그래서 거의 침대 붙박이다. 참 가련한 삶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신체의 한 부분이 기능을 상실하면 다른 부위가 그 손실을 보완하려고 더욱 예민하고 섬세해진다는 것이다. 시력을 상실하면 청력이나 촉각이 한층 발달하고, 정서적으로도 더욱 섬세하고 민감해진다. 하지만 그 예민함이 나쁜 쪽으로 기울게 되면, 사람이 쉽게 신경질적이며 과격해지고, 그래서 의료적인 도움이 필요하게도 된다. 로레따는 거의 시력을 상실한 상태여서 공식적으로는 이미 맹인이다. 모양이나 색깔은 구별하지 못하고, 단지 물체의 흐릿한 윤곽을 명암의 대비로만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흐릿하고 옅은 인식으로 내가 문간에 들어설 때부터 곧바로 나를 알아본다. 표정은 볼 수 없어도, 더욱 예민해진 감각으로 내 음성이나 악수할 때의 촉각을 통해 순간적으로 그날 내 기분과 정서도 읽어낸다. 마치 족집게처럼 내 감정을 짚어내고는, 내가 좀 더 밝고 편안해 보이는 날이면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나이가 구십이 다 되어가도 그는 아직 섬세한 여인이었다. 침대에 누인 채 전신을 따듯한 물수건으로 깨끗이 씻겨주면 아직도 수줍어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대소변을 본 기저귀를 갈아줄 때면, 이렇게 도와주니 고마우면서도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어쩔 줄을 모른다. 자기를 보살펴주느라 내가 고생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거듭 반복한다.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한국 출신의 어느 어머니의 외아들이었다고, 그런데 일 때문에 여러 나라에 옮겨 다니며 사느라 어머니를 잘 모셔보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마지막에 폐암과 치매로 갑자기 돌아가실 때도, 아들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마음에 걸려 일종의 보상 심리로 이 일을 하고 있노라고 했다. 그래서 로레따를 내 집에 들일 때 내 가족으로 받아들였노라고, 그러니 너무 미안해 하거나 죄송스러워 하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나를 도와주는 셈이니 함께 기뻐하자고 했다. 그가 손을 얼굴로 가져간다. 아마 내가 그녀를 울렸나 보다. 그녀의 보이지도 않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참을 흐느낀다. 나도 울었다.

 

어느 이른 아침 그를 씻겨주고 있는데 내게 불쑥 이렇게 묻는다.

“Daniel, were you a good father?”( 다니엘, 넌 좋은 아빠였니? ).

 

오십이 넘은 착하디착한 아들이 홀로된 채 아이들을 기르며 고생하고 있단다. 마음을 더 상하게 할 것 같아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며느리가 일찍 세상을 떴든지, 아니면 가정에 무슨 어려운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자신은 아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기는 커녕, 외려 이런저런 짐만 되고있다고 한숨을 쉬며 안타까워한다. 아무래도 자기는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얘기다.

 

나도 세월을 되짚으며 깊은 상념에 젖는다. 사느라고 바빴지. 좋은 아빠 되는 건 배운 적도 없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성격은 불을 질렀고, 그래서 난 좋은 아빠라기 보다는 부끄러운 아빠였다고 대답했다. 순간 나의 삶이 마치 어떤 저울 위에 올려진 기분이다. 글쎄, 아주 실패해 버린 걸까. 만회할 수는 없을까. 왜 인생은 연습도 없이 단 한 번만 지나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아직 아버지가 생존해 계셔서 아들 노릇은 다시 잘 시도해 볼 기회가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애들은 이미 다 성장해버려서 자기들 둥지가 따로 있다. 이제 나를 별로 필요로하지도 않는다. 그럼 좋은 애비가 되어볼 기회는 이미 틀렸다. 하지만 내 아버지가 아직 생전에 계시니, 그런대로 괜찮은 아들 흉내라도 낼 수 있다면 그것만도 어디게…

 

문득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로레따, 할머니가 건네신 질문이 너무 버겁네요. 그렇기를 바랬지요, 하느라고 했고... 그래도 내 새끼들은 아마 생각이 다를 거예요.”

 

우린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좋은 아빠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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