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인생이 참 야속하다. 로렌은 나이 들며 눈이 말을 안 듣고 손발도 말을 안 듣고 그래서 늦으막엔 휠체어 신세가되었다. 결국엔 침대 붙박이로 하나부터 열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가련한 영혼이 되었다.
거동이 제한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심각한 일이다. 노인들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어쩌다 교통순경에게 티켓을 받는것이다. 그냥 벌금 티켓만 주는 것이 아니라, 보통은 자동차 면허증을 되돌려주지 않고 차량관리국에 가서 면허를 다시 내라고 한다. 좀 점잖은 방법으로 면허증을 회수하는 것이다. 사실 너무 연로한 분들이 운전하는 것은 본인과 타인에게 위험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항의도 못한다. 문제는, 운전을 못하게 되면 심리적으로는 물론 여러 면에서 안타깝게도 인생의 급속한내리막길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과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이 발달한 한국에서는상황이 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이나 미주에서는 차량은 자신의 발이고 사회와 연결시켜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그렇다.
자동차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실내에서나 근거리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는 휠체어가 있다. 그런데 이제 휠체어마저도 사용할 수 없어서 침대 신세가 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로렌이 그런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호이어 리프트(Hoyer Lift)라는 기구가 있어서 낮에는 패밀리 룸의 리클라이너에 옮겨놓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거기서 다른 환자들과 인사도 나누고 친분을 쌓고 함께 음악을 듣기도 한다. 요양원에 있는 환자들은 거의가 비슷한 상황이다. 병명이 다르고 정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모두가 누군가의 도움과 보살핌이 절실하다.
로렌이 방에서 침대에 누워만 있을 때는 상황이 더 딱해진다. 그녀는 누군가가 나타나서 자기와 이야기를 나눠주고 눈을 맞춰 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플 때 약을 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기저귀를 갈아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어디가 가려워도 손이 잘 안 닿는 곳은 누군가가 곁에 와서 긁어줘야 한다. 모든 것을 기다려야 한다. 여까지 만도 숨이 막힌다. 게다가 치매로 뇌까지 속을 썩이면,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매사에 모든 것이 항상 걱정이다.
가련한 로렌은 이른 아침 몸을 씻기려 방에 들어서면, 여태껏 어디서 무얼 했었냐며 밤새 걱정했다고 울먹이는 작은새다. 그래도 치매가 고마워서, 날 남동생으로 알았다가, 남편 친구인 의사로 알았다가, 어떤 때는 그리운 아무개 이웃으로 알았다가, 늘 반갑고 그립다. 그는 늘 인기척만 기다리고 산 거다. 볼 부비며, 나도 로렌 걱정하고 보고 싶었었다고 하면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사람이, 정이 그렇게 고픈 거다.
내가 로렌을 아주 좋아하는 것은 그가 한국 음식을 참 맛있어하기 때문이다. 요양원에는 한 달짜리 메뉴 테이블이 있다. 그 메뉴 테이블에 한국 음식을 넣을 수는 없다. 환자 대부분이 백인이거나 중동, 혹은 동남아 지역에서 온 이들이고, 한국음식이 아직 세계화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낯선 문화권의 모르는 음식을, 그것도 연로한 분들이 시도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절대 시도하려 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한국 음식이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내가 한국 음식을 만들어 맛있게 먹으면 궁금해하고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러면 내 음식을 좀 덜어줘 본다.
한국 음식을 유난히 좋아하던 로렌은 원래 한국에 태어났어야 했는데 조물주께서 실수하셔서 번지를 잘못 고르셨다.한국 음식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오뚝한 코에 파란 눈이 깊은 노랑 머리 여인이 부추전, 칼국수, 수제비, 김치 부침개를, 뭐든 아이 마냥 좋아했다. 이렇게 맛 좋은 음식은 처음이란다. 그리고 모두 건강식이란다. 참, 내, 나보다도 한 수 더 뜬다.그는 어린 천사였고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친구, 선물이었다. 우린 한동안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 이렇게 서로의 삶을 채워주고,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그런데 어저께 그가 갑자기 잠드셨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다. 비교적 건강하던 분들도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그저 하루하루를 살 뿐이다. 그래서 항상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그날그날을 잘 마감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하다. 사실은 노인 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어쩌면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늘 진실하고 예쁘고 소중하게살아야 하는 이유다. 나는 나를 배웅하는 이들에게 귀하고 아름다운 기억들만 남겨주고 싶다.
그를 보내고 나니 아주 빈 집이다. 온 집이 텅텅 비었다. 세상에 아무도 안 남은 듯이 허전하다. 오늘은 아마 해도 안뜰 거다.
허전한 마음으로 그의 빈 방에 들어서는 내게, 그가 머물던 침대가 연실 조잘거린다. “왜 너는 빈자리가 되어야 비로소느끼니. 떠나고 나서야 그 공간이 얼마나 크고 소중했는지, 네 삶에 어떤 부분을 채우고 있었는지 비로소 느끼냐고…” 날 보고바보랜다.
로렌이 떠났지만, 그녀와 함께했던 따뜻한 기억들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난 아마도 한동안 그를 잊지 못할 거다.그리고 언젠가 부추전이나 칼국수를 먹을 때, 그가 한국 음식을 그렇게 맛나게 먹던 모습을 회상하며 빙그레 웃을 거다. 그게아마도, 그녀가 남긴 사랑의 흔적이겠지…
날 보고 바보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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