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같은 크고 작은 명절에는 찾아오는 손님들로 요양원이 붐빈다. 치매 증상이 있는 환자들이어서, 자신의 가족들을 알아보는 경우도 있고, 방문자들이 누구인지 왜 찾아왔는지 영문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많이 반가워하고 흡족한 시간을 보낸다. 방문자가 누군지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일지라도, 일단은 그들이 언젠가 많이 본 듯 안면이 많아서 기뻐하며 얘기를 잘 나눈다. 물론 사리가 맞는 대화는 그리 많지 않지만, 어쨌든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상당히 위로가 된다.
가족들이 떠나고 난 후, ‘참 정겹게 얘기를 나누시던데, 그들이 누구였느냐?’고 물으면, 모른다거나, 아는 어떤 이웃이라거나, 혹은 엉뚱한 어느 다른 사람을 얘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딸을 자기 언니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인식하고서, ‘우리 언니가 나보다도 훨씬 더 젊어 보이지요?’라고 묻기도 한다. 이건 치매 증상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정도면 좋은 경우에 속한다.
방문하는 가족들이 너무 당황하고 실망하지 않도록 미리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주고 이해시키려 노력하지만, 그래도 서서히 허물어져가는 환자의 상태를 알게 되면서 가족들은 마음아파하며 당황하고 괴로워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마음도 힘들다. 때로는 너무 실망하고 낙심해서, 그 후로는 방문 횟수가 점점 뜨막해지는 경우도 있고, 아예 거의 찾지 않는 이들도 있다. 마음이 많이 서글퍼진다. 그래도 그 가족들을 나무라거나 탓할 수도 없다. 이제는 더 이상 함께 교감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정이나 사랑을 나눈다거나 추억을 공유할 수 없다면, 그 관계는 이미 깨어진 것이나 진배없으니 말이다. 부부 관계는 하늘이 점지해 주신 것이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천륜이라고들 하지만, 그것도 별로 신통찮은 것인 걸 참 여러 번 보았다. 많이 서글픈 일이다. 서로 기회가 허락될 때, 피차 교감할 수 있을 때,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충분히 사귀고, 아끼고, 사랑하고, 예뻐하고, 그리고 마음껏 행복해 할 일이다.
어쨌든 잠시라도 반가워하고 기뻐하고 한 날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 만도 좋은 것이니, 우린 요양원의 환자 가족들, 친구들, 교우들이 자주 방문해 주기를 원하고 권장한다. 그런 날은 환자들의 모습도 더 정성들여 다듬어주고, 옷 매무새도 더 좀 잘 어울리도록 마음을 기울여준다. 그런데 정작 요양원의 환자들은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상대방이 왜 그리들 호들갑을 떠는지 이상할 뿐이다. 예쁘게 단장하고 멋을 부리는 것도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할 일이다. 철부지라고 나무라지 말아야한다,다 때가 있는 거니까…
방문자들이 많은 날 더 시무룩하고 서글픈 사람도 있다. 특히나 명절 때마다 요양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오손도손 찾아드는 방문객들 바라보는, 80대 후반 우리 Anna 할머니는 그들이 참 많이 부럽다. 치매가 아니어서 그녀는 오늘이 슬프다. 온종일 먼산만 우두커니 바라보다 눈엔 대추알 만한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누군가 울려주기를 바란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그건 누가 내린 형벌인지. 먼저 간 야속한 남편과, 엄마보다 앞서버린 외아들 Michael을 잊을만 했었는데, 또 다시 서럽다. 어느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이, ‘무자식이 상팔자’라 했는지, ‘남편은 웬수’라 했는지, 복에 겨운 소릴 누구 앞에서 하는지 모르겠단다. 왠지 하늘은 유독 자기에게 그렇게 불공평했다며, 시선을 멍하니 허공에 둔 여인에게, 인생은 참 서럽다. 살며시 어깨를 보듬어주면 뜨뜻한 눈물이 내 발등을 적신다.
지난 10월 어느 날 자신의 컨디션이 이상하다며 나와 조용히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 가족이나 일가 친척, 이 세상에피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생면부지의 늙은이 자신을, 왜 길에다 내어버리지 않고 보살펴주냔다. 피붙이가 아무도 없는 그녀를 볼 때 난 내 어머니 생각이 났다고, 그래서 그녀를 내 가족으로 받아들였노라고 대답했다. 가만히 듣고 있더니 이렇게 묻는다. “What does it mean when you say ‘family’?” (네가 가족이라고 말할 때 그게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니?). 그녀는 전형적인 백인 여성이고, 어쩌면 우리 한국인이 이해하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녀를물끄러미 바라보다가, ‘Family means everything.’(그건, 그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을 의미해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그녀를 울렸나보다. 참았던 울음을 더 이상 가누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인다.
몇일 후에 그는 평화롭게 잠드셨고, 나는 지금도 그녀가 많이 그립다. 속이 무척 깊은 여인이었고, 내가 치매 환자들을보살피다가 심신이 지쳐서 힘겨워할 때면, 안스러워하며 나를 북돋워주던 분이었다. 우린 가족이었다.
그대가 부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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